NOTICE
#5 |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정주행
DIARY

넷플릭스 보다가 괜사가 자기 인생 드라마라며 염불 외우던 이지후가 생각나서 이틀 만에 정주행했다.
인생 드라마가 바뀔 정도는 아니었지만 캐릭터 설정이, 대사가, 결말이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이 많이 나온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추운 장면이 없어서 너무 좋았음 ㅜㅜ
막 슬기로운 감빵생활처럼 입김이 펄펄 나는 추운 날,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 없어서 보는 내가 편했달까•••
한 겨울에 방한 1도 안 될 것 같은 예쁜 코트를 입고 안 추운 척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결정적으로 OST가 너무🤦🏻‍ 정말 너무 좋았다.
Love Fiction 중3 이후로 안 들었던 곡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역시나 좋다.

너랑 난 계획적이고, 목적의식이 분명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네 인생의 계획표에 나를 넣어.
난 이미 내 인생 계획표에 널 넣었어.
내 멋대로 살다가, 네 멋대로에 맞추는 중이라고.
[괜찮아 사랑이야 12회 - 장재열] 

무계획도 계획이라 생각하며 보다 즉흥적으로 사는 내게
철저한 계획주의자 지해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드라마는 사실 매우 많이 답답했다.
당장 내일의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인생 계획표를 세우고 살지?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훨씬 많은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타인이 내 계획에 동참해주지 않을 가능성은?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인데 주어지는 순간들을 즐기며 살면 맘 편하지 않나?
근데 이건 뭐 성향 차이니까,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으니까 그러려니 하며 봤는데.

이런 상황, 사랑만으로는 견디기 힘드니까.
난 사실 지금도 저들이 영원할 거라곤 안 믿어.
근데 응원은 하고 싶더라.
저들이 정말로 잘 살면, 나도 사랑을 믿게 될까 싶은 기대도 있고.
그래서 난 저들을 위해 집안의 초를 키지.
도와주세요, 누구든 저들을.
정말로 사랑이 저들을 구할까?
- 그럼.
너도 사랑 지상주의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 거라고?
-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돈돼야 사랑이지.
[괜찮아 사랑이야 5회 - 지해수&장재열]

성향을 떠나서 지해수 성격은 진짜•••
밑도 끝도 없이 이기적인 모습에 보는 내가 다 지쳤음.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 거의 김주영 선생급 의심🤦🏻‍)
이전 여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방의 진심을 폄하하는 데에 조금도 거리낌없는 데다가
자기 상처에 파묻혀 다른 사람의 상처에는 무지하다.
성향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무례하고, 철저히 본인위주의 행동과 말을 내뱉는 지해수를 보며
나였으면 진작 손절했겠다 수백번 생각함🤦🏻
심지어 권위적이기까지 해. 선배라는 권력은 왜 이렇게 남용하는 거지.
학교고 회사고 어디서든 상종하기 싫은 스타일 진짜•••

강박증인 내가, 네가 그리워 네가 다녀간 흔적들을
치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언젠간, 이 모든 흔적들이 일상이 되길 바라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사랑해. 지해수
[12회 - 장재열]

그런데 장재열은 그런 지해수를 품어내며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적응시켜 간다.
자기감정에 솔직하되 그 감정을 해수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해수의 이기적인 모습에도 필요 이상으로 인내해낸다.
그렇게 함께한다.

뭐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막힌 사랑을 할지도 모르지. 기대 중이야.
- 뭘 그걸 상상하고, 상상하고, 다짐하고, 다짐해.
  그냥 하면 되지, 가볍게.
그걸 가볍게 어떻게 하니?
- 왜 못해?
[3회 - 지해수&장재열] 

장재열은 진짜 매력적인 캐릭터다.
뺄 수 없는 부분이지만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을 제외해도
사회적 지위며, 자존감이며, 자신감이며, 사고방식이며 심지어 위트도 있음.
(잘생겼는데 재밌으면 최고잖아. 맞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하는 말마다 맞는 말 대잔치라 내 기준 매우 이상적인 사람이었음.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판단력이,
대뜸 말 놓자며 반말하던 조동민에게 끝까지 존댓말로 상대하던 올곧음이,
상대의 배려 없음을 배려로 감싸 안는 인내심이 보는 내내 '진짜 대단하다' 싶은 캐릭터였음.

그런 의미로 괜사 공식 사이트에서 줍줍한 말도 안되는 저 세상 주접짤을 첨부해 봄.

근데, 사랑하는 관계에서 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있잖아.
나 이번에 약자 되기 싫은데 강자 되는 법 혹시 알아?
- 더 사랑해서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약자가 되는 거야.
  내가 준걸 받으려고 하는 조바심, '나는 사랑했으므로 행복하다, 괜찮다.'
  그게 여유지.
[11회 - 박수광&장재열] 

이 드라마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 자신의 상처가 타인에게 상처를 줘도 되는 권리가 되었나'
'자신이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줘도 괜찮은 건 아니지 않나'
'상처받은 사람이 던졌다고 해서 그 돌이 덜 아픈 것도 아닌데'
'그럼 이렇게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방패 삼아 나에게 화살을 던질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을 품어야 되는 걸까'
'그런데 상처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장재열은 도대체 지해수를 어떻게 품어내는 거지' 
'이래서 짝이 있다고 하는 건가.'
'근데 내가 싫어하는 지해수의 모습들이 나에겐 정말 없을까. 아닌 척 외면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마음 아픈 환자들 고치는 놈이 마음 아파서 상담 좀 받았다. 어쩔래!
야 너희들 외과! 암 고친다고 암 안 걸려?
그리고 내과! 감기 환자 고친다고 감기 안 걸려?
신경외과! 너희들 뇌종양 안 걸려?
[1회 - 조동민]

이런 물음표를 던지며 16회를 정주행한 다음 얻은 결론은 "상처가 상처를 덮는다."라는 것이었다.
등장인물 중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는데,
저마다 아픈 상처가 하나씩은 있는 이 사람들은 상대의 아픈 몫을 함께 짊어지며, 끊임없이 위로하고, 서로를 품어낸다.
(제3자 입장에서 그 크기가 달라 보여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상처의 아픔은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상처는 상처니까)
상처하나 없는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품어줘야 뭔가 맞아떨어질 것 같은 느낌인데.
돈뿐만 아니라 상처도 빈익빈 부익부구나. 정말 모순적이지만 씁쓸한데 따뜻하다.

넌 내가 딱이야.
넌 돈에 얽매이는 스타일이라 사업하는 남잔 네 돈 날릴까 봐 싫을 거고,
공무원은 너무 안정적이라 지루해 싫을 거고,
회사원은 자나 깨나 승진 걱정하는 걸 싫어할게 뻔해.
교수는 잘난척해 싫을 거고, 음악가는 음악 듣는 게 싫을 거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여기저기 물감 튀는 게 짜증 날걸.
넌 내가 딱이야.
[11회 - 장재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재열이 강우가 환시임을 인정하고 해수에게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재열은 과거의 상처로 스키조를 앓게 되고,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사랑하는 해수에게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이 수치스럽다며 퇴원을 감행한다.
근데 그런 재열이 자신의 환시를 직면한 뒤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해수에게 돌아와 도움을 청한다.
안 그래도 원체 멋있는 캐릭터였는데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뒤,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에 정면돌파하는 장재열의 '강인함'이 되게 인상깊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타인의 도움없이 혼자 극복해내는 것이 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보는 사람 입장에서 '강해보이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그리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다면 그 손을 잡을 줄 아는게 진짜 강한 사람 아닌가.
내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것,
스스로를 필요 이상의 극한으로 몰아 혹사시키지 않고, 적절한 도움을 통해 자신을 지켜내는 것 
그게 스스로에게는 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재열은 그렇게 한다.
그래서 멋있었고, 좋았다.

다른 규칙은 개나 주라지요 뭐
규칙의 홍수 속에서 우리 홈만이라도 자유롭게 맘껏 즐겨요
[2회 - 조동민]

사실 극초반에는 성동일 배우님 특유의 장난스러운 느낌때문에 '조동민'은 그냥 가벼운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너무 중요한 인물이어서 놀랐다.
입만 열면 맞는 말이라 너무 취저였음ㅜㅜ 뼈 있는 말을 너무 무겁지 않게, 스치듯 새겨지게 던지는 게 되게 멋있었음.
그리고 이건 TMI지만 환자 진료하랴, PD랑 방송 미팅하랴, 장재열 사건 파헤치랴, 교도소 가서 장재범 치료하랴•••
진짜 강식당 이수근 급으로 할 일이 많아서 보는 내내 '실제로 저렇게 살면 과로사로 단명하겠다' 생각하며 봤음.

사람들은 모두 천년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천년의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빛이 되는 건 지금처럼 한순간이야.
네가 30년 동안 사랑을 못했다고 해도,
300일 동안 공들인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괜찮다고.
다시 사랑을 느끼는 건 한순간일 테니까.
[4회 - 장재열]

이러쿵저러쿵 말이 길어졌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 방식을 바라보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그냥이 그냥이었다는 지해수의 말처럼 사랑도 그냥 사랑인 것 같다
모양과 방법이 다르지만 쉽사리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은 지금도 어렵지만 죽을 때까지 계속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