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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2018>' 후기

MI NYONG 2020. 3. 9. 01:59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요리하는 장면이 워낙 유명해서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는데!
 이 영화 뭐야...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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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동일하게 포스터에도 사계절을 담은 것이 인상 깊다. 그리고 김태리는 정말 예쁘다.

줄거리 및 등장인물 소개

이거 오류 뜬다는 소리거든요. 혹시 현금이나 뭐 다른 거... 가지신 거 없으세요?

<리틀 포레스트 - 혜원>

혜원은 포스기 오류 소리를 앞세우며 잔액이 부족하다는 말을 돌려 말한다.
내가 좀 전에도 카드 쓰고 왔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기계에 똑바로 긁으라는 손님의 말에 혜원은 그냥 참는다.
상대방이 먼저 알아주길 바라며 그저 견딘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친구와 함께 준비하던 임용고시에서 혜원만 떨어지게 되고, 그 길로 서울을 떠나 고향인 미성리로 내려온다.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 생각할 여유도 없이, 왜 사는지 모르겠고,

월급날이나 꾸역꾸역 기다릴면서 사는 게. 어느 날인가 문득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고

<리틀 포레스트 - 재하>

재하는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에 성공한다.
그러나 회사는 사기와 잔머리가 난무하는 곳이었고, 이렇게 사는 삶은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래서 "월급 축내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라는 상사의 말에 재하는 곧장 짐을 싸서 미성리로 돌아오고,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과수원을 운영하게 된다.

이렇게 다니다가는 내가 암 걸려 죽을 것 같아.

<리틀 포레스트 - 은숙>

은숙은 전문대를 졸업한 뒤, 농협에 취직한다.
고향 토박이인 은숙은 이곳이 촌스럽고 답답하다며 서울살이를 꿈꾸지만 쉽게 떠나지 못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시험, 연애, 취직 등 매일 반복되는 일상 생활에 지친 ‘혜원’이
고향집에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칼과 총이 난무하는 <버드 박스>를 본 다음이라 그런지, 이 영화의 평화로움과 잔잔함이 더욱 와닿는다.

 

#6 | 넷플릭스 영화 '버드박스 ' 후기

“절대. 눈을. 뜨지 마라!”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창문에 머리를 박고, 차에 뛰어든다. 갑자기 집단 자살이 전염병처럼 퍼진 것이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그것'을 보면 죽는다. 눈을 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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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빗소리, 성냥 피우는 소리, 요리하는 소리···
영상 자체가 편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소리가 살아 숨 쉬는듯한 느낌이라 너무너무 좋았다.
정말 '힐링 영화' 그 자체였음.

그리고 혜원과 재하와 은숙, 세 사람이 모인 매성리. 이 장소가 담고 있는 의미가 재밌었다.
누군가에게 떠나고 싶은 곳이, 누군가에겐 돌아갈 곳이고, 또 누군가에겐 피할 곳이 된다.
누군가에겐 숨 막히는 곳이, 누군가에겐 숨 쉴 곳이 되는 것을 보면
장소가 답답했던 건지, 상황이 답답했던 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걱정 어린 남자친구의 연락에도 답장하지 않는다.
그저 열흘쯤 뒤에 다시 서울로 올라갈 거니, 그때 얘기하자며 뒷일로 미루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남자친구의 기쁜 소식을 축하해 주지 못하는 여자친구
연인 관계를 어쩌지도 못한 채 연락도 되지 않는 여자친구로 남아있는 혜원이었지만
'속 좁게 그걸 축하 못 해줘?'
'기다려 달려든지, 헤어지자든지 관계 정리를 똑바로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답장은 해주지'라는 둥의 질타는 할 수가 없었다.
혜원이 정말로 나쁜 사람이어서, 속 좁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였으니까.
사람이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내 아픔, 내 슬픔, 내 힘듦이 우선시 될 수도 있으니까.
이런 혜원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아 더욱 뭐라 할 수 없었다.
'내 맘 돌볼 여유도 없는데 다른 사람 먼저 신경 쓸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고향집에서의 시간을 보내던 혜원은 문득 재하를 보고 깨닫는다.
재하도 자신도 그냥 '고향으로 돌아온 것'인 줄 알았는데
재하는 해답을 찾아 고향을 선택한 것이었고, 자신은 문제를 피하기 위해 도망쳐왔던 것임을.
그리고는 '해답도 없이 도망쳐 온 이곳에서 겨울만 보내고 가긴 억울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봄이 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좀 더 있기로 한다.
(혜원은 현실을 피하기 위해 고향집으로 도망친 거지만, 한편으로는 도망칠 곳이 있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도망쳐버리고 싶은데 막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낮엔 공부, 밤엔 알바로 채워졌던 혜원이의 하루는 씨앗을 심고, 생명을 싹 틔우는 하루로 바뀐다.
편의점 음식과 길거리 음식으로 해결했던 허기도, 건강한 재료로 만든 정성스러운 한 끼로 채운다.
엄마와 함께 살던 고향집에서의 생활은 엄마가 말도 없이 떠났던 날까지 떠오르게 하지만
혜원은 그런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엄마와의 추억을 되돌아본다.
혜원이가 밭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과정들이 단지 농사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모든 과정은 혜원이의 마음 밭을 갈고, 엄마를 이해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었고,
그렇기에 혜원이가 심은 작물들이 자라나는 만큼, 혜원이도 함께 성장한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고, 그 봄이 지나 여름이 되어서야 혜원은 남자친구에게 연락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 이 말은 꼭 제대로 하고 싶어서.

(뭐, 헤어지자고?) 그것도 그건데.

시험 합격한 거, 많이 늦었지만 정말 축하해.

<리틀 포레스트 - 혜원>

두 계절을 지나서야 전한 말이었지만, 혜원이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음에 내가 다 감동적이었다.

누군가는 <리틀 포레스트>가 시골 라이프에 대해 허황된 꿈을 꾸게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 농경생활의 좋은 점만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자려고 누우면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리고,
장을 한 번 보려면 읍내까지 자전거 타고 나가야 되며,
돈도 ATM에서 뽑는 게 아니라 은행에 가서 뽑아야 한다. (그 외에도 더 있음)
두꺼운 시멘트 집에서 살아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나가봐야 아는 사람들에게
자기 전에 장 볼 품목을 결제하면 눈 뜨자마자 받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방에 있는 ATM 기계에서 언제나 돈을 뽑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절대 시골 생활의 장점만이 와닿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현실도피를 꿈꾸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고
자극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담백한 영상과 사운드로 눈과 귀를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환영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별할 거라곤 없는 이 영화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요리 장면도 있지만) 영상미와 연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화면전환도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것은 엔딩장면이었음.
아주심기를 마치고 돌아온 혜원이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걸어올 때
BGM과 발걸음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정말 봐도 봐도 너무 좋음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곱씹을수록 좋은 대사들도 한몫한다.

겨울이 와야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가 있는 거야.

<리틀 포레스트 - 혜원 엄마>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리틀 포레스트 - 재하>

아무 말도 안 하고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

말 안 하고 참는다고 알아주고 그런 거 하나도 없더라. 내뱉고 싶을 때 내뱉어야지 속에 독이 안 쌓인다고.

<리틀 포레스트 - 혜원>


<리틀 포레스트>는 '사람의 마음도 가꿔줘야 자라난다'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안 그래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마음'을 가꾸라니, 무슨 팔자 좋은 소리냐며 푸념할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을 돌보지 않아 스스로가 '번아웃' 상태임을 뒤늦게 알아챘던 나로서는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팔이나 다리의 아픔은 누군가 먼저 알아채서 병원에 데려가 줄 수도 있지만,
꽁꽁 가려져서 아픈지 안 아픈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마음은 내가 먼저 챙겨야 한다.
만약 자신의 마음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면 지금 내가 속상한 건지, 답답한 건지, 우울한 건지, 화가 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위로가 된 이 영화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의 도구로 사용되면 정말 좋겠다.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맘에 든 영화!